검색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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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아야,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카톡 대화1 카톡 대화2 “엄마, 나 반장 떨어졌어 집에와서 울고 있었어” “나 부반장 됐어 초등학교랑 달라 부반장 선거 따로 안해 그냥 2등이니까 부반장하래 선생님이 그래서 2학기때 반장 못나가 그래서 내일 그만둔다고 얘기할까 고민중이야” “엄마, 나 어느 고등학교 갈까? 아 오빠가 자꾸 놀리잖아 자기는 내 나이때 과고가려고 벌써 결정하고 준비했다고 나보고 어디갈건지 생각도 안했냐고 아 너무 재수없어!” “엄마 학원 선생님이 나보고 외고가래 오빠처럼 근데 나는 영어 싫어 단어외우고 하는 거 너무 귀찮아” “엄마 일차방정식 할 줄 알아? 나 이번에 수학에 반했잖아 일차방정식 배우면서 아니이~~이게 알고나니까 너무 아름다운거야~” “엄마, 나 반장 왜 하려고 했었는지 알아? 반장이 되면 학생부 점수가 있어 0.5점 부반장은 0.3점이야” “엄마, 나 방송반 떨어졌어ㅜㅠㅠ 그래서 또 울었어 아 인생 참 쓰다 이번주 내내 학교만 끝나면 집에서 혼자 울고이쌰 나 수분부족 됨” “다른 동아리 하고 싶은거 없었는데 꼭 1개는 들어야 된다고 해서 ‘또래 상담사’ 그거 신청했어 그게 제일 인기가 없어서 자리도 남았고 그게 봉사점수도 받고 뭐도 받을 수 있거든 일석이조 같은거야” “엄마, 나 수학시간에 퀴즈 맞춰서 점수 땄잖아 3명만 받는건데 내가 무려 2등을 했어 박수~~~ 나 학생부 점수 벌써 몇점 될걸?” “엄마, 나 어느 고등학교 갈까? 엄마 나 여상 갈까? 나? 돈을 빨리 벌고 싶어” "엄마아~~ ........" "엄마? ........." "엄마! ........" 보통 여자 아이들은 7세가 되면 글에서 ‘나’라는 표현이 시작된다고 한다 드디어 자아에 대한 인식이 생겨나는 나이다 그 전까지는 자아에 대한 인식이 없는 자연인에 가까운 상태인 것이다 물론, 남자아이들은 훨~~~씬 늦다 12세가 넘어야 한다 ^^;; 18살인 고2 오빠가 아무것도 모르고 14살 중1이 된 동생에게 나는 니 나이때 이랬다 저랬다 뻐기는 이유다 아이는 내 예상보다 자기 삶에 대해 진지했고 계획적이었고 충실하다 내가 아이에게 바라는 건 단지 이것뿐이었다 내 생각대로 키우면 고작 나처럼밖에 되지 못하니 내 계획과 틀에 아이를 끼워 넣지 말아야지 넓은 세상에 풀어놓고 키워야지 아이의 가이드가 일개 부모일 뿐인 내가 아니라 세상이 아이의 가이드가 되기를 자기의 철학과 기준을 스스로 세워가기를 그것이 아이를 인도해줄 것을 믿었다 아이가 나처럼 되는 것이 아니라 나보다 나은 사람이 되기를 나를 뛰어넘는 삶을 살기를 믿어주고 나는 뒤로 물러난다 주인공이 너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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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엄마는 나 낳았을때 마음이 어땠어?엄마가 그랬다. “그래도 니 낳고는 서울로 살림 날끼라고 엄마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그 때는 지인~짜 좋았어” 그 말 덕분인지 모르겠다. 내가 마음속으로 엄마와 정말로 화해가 된 건. 내가 엄마한테 행복함을 주었다는 사실. 사실은 내가 엄마에게 그렇게 귀찮고 하찮은 존재가 아니었다는 사실. 나를 낳고는 그 시골에서 서울로 이사를 하고 살림을 날 거라고 좋아하는 젊은 엄마가 떠올랐다. 그 시점에 태어났을 뿐인 나를 복덩이라고 의미를 덧붙여 더 좋아했을 엄마가 보이는 것 같았다. 곧 이사를 하면 새로운 삶을 살게 될 거라는 희망에 부풀어 있는 30대의 젊은 새댁이었을 우리 엄마. 딸이라 그런지 더 예쁘다라고 말하며 웃고, 행복해하며 나를 내려다보는 엄마 표정이 떠올라 마음이 그만 황홀해졌다. 엄마가 나 때문에 행복한 적도 있었구나. 그래, 어찌보면 엄마가 나 때문에 행복한 적이 많았겠구나. 내가 아이를 낳고 아이를 보며 마음이 행복하고 흐뭇한 걸 보면... 아빠 때문에 구겨지고 힘들어진 엄마 마음 한편엔 그래도 내가 늘 사랑스럽고 예뻤겠구나. “하이고~니는 좋은 일만 있었어. 시골 내려올 때도 그래. 니 고1 때니까 사춘기 아이가. 어디 다른 시골, 머 강원도나 전라도나 이런데서 온 것도 아니고 서울에 살다가 그 시골로 이사를 했는데 싫다 소리도 안하제 친구들하고도 잘 지내니까 엄마는 고마웠지. 그라고 2학년땐가? 반장도 안 했나. 아, 2학년, 3학년 두 번 했나? 그 봐라~. 전학가가 반장 2년 동안 하기가 쉽나~ 대학도 특차에 한 번에 안 붙었나. 그것도 국립대. 엄마가 하도 국립대 아니면 안 된다고 세뇌를 시켜갖고 니가 그래 안 됐나 ㅎㅎ. 그 때 경북대를 갔어야 되는데. 그 때 넣었어도 아마 됐을거야. 그치? “ “우리가 할머니 집에 모시고 십 몇년을 살았는데 니 방 창문 열면 베란다 아이가. 그 베란다 쓰레기통에 할매 기저귀 땜에 똥 오줌 냄새가 방에 그렇게 진동을 하는데, 니는 참말로 냄새난다고 불평도 한마디도 안하고.... 여름 되마 방에 창문도 몬 닫고 냄새가 진동을 할 낀데도 한 번도 냄새난다고 소리를 안하드라고. 그 때는 참말로 엄마가 미안하드라. 한창 여고생이 깔끔 떨고 유난떨고 할낀데, “ 그 때쯤 목이 메었던 거 같다. 아......엄마가 아는구나. 맞아.... 냄새 많이 났었지. 그래도 그냥 그렇게 사는 건줄 알았지, 난 불평할 꺼리라곤 생각 못 했는데...그래서 난 원망하는 건 없었는데.... 엄만 그런 것도 하나하나 고마웠구나... 추억은 웜홀 같다지. 시공간을 초월해서 그 때의 시간 그때의 나로 한꺼번에 빨려 들어간다고... 엄마 얘길 들으니 그 때 할머니 기저귀 냄새가 다시 난다. 난 싫지 않았는데. 냄새라고 못 느꼈는데. 그 방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난 좋은데. 난 오히려 그립다 할머니 냄새. 드시는 약 때문에 약간 병원냄새 같았던 할머니 기저귀 냄새. 그 때의 엄마는 대학생인 오빠와 고등학생인 나까지 자식 둘에다 중풍으로 누워계신 시어머니까지 모시고 그저 살기에 바빴고, 감수성 예민한 그 때의 내게 그 공허한 간극을 메꿔주는 할머니라는 존재가 있어서 난 그나마 좀 포근했는데.... 그래서 그건 나에게 냄새가 아니라 추억같은건데... “엄마, 나 태어났을 때 엄마 마음이 어땠어?” 라는 질문 하나로 행복한 말들을 너무 많이 들었다 나의 탄생이 부모에게 소중했다는 얘기가 나의 자존감을 한꺼번에 쑤욱 올려줬던 것 같다. 나의 존재는 부모로부터 왔으니까. 그 당연한 진리가 부모의 말이 나에게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 가를 알게 해 주는 것 같다. 서울로 살림을 나 희망에 찼던 젊은 새댁이 신랑과 재미지게 살기까지 했다면, 나는 “재수없다 저리가라.” 라는 모진 말이 아니라 “엄마가 너 낳고나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아니?” 라는 달콤한 말들을 진작 듣고 살았을텐데, 내가 그렇게 사랑스러운 아이였구나... 나 사랑스러운 아이 맞구나! 라는 생각에 얼마나 안심이 되는지, 오늘따라 목울대가 왈칵왈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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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할 베짱농담할 베짱 ‘산다는 건 참 고단한 일이지’ - 임재범 ‘살아야지’ 中 줄곧 모범생 비슷하게 적당히 눈에 띄지 않게 살아왔다 공부는 곧잘했고, 반장도 서너번 해봤고 국립대에 특차로 합격도 해봤다 전공은 딱히 적성에 맞지 않았으므로 결론은 자연스럽게 취집(취직+시집)이었다 대학에서 만난 선배와 무난하게 결혼해서 아이도 둘을 낳았으니 ‘오손도손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로 마무리 되는 삶인 줄 알았다 이렇게 적당히 외줄타기하면서 ‘나’를 연기하며 사는 게 인생인가? 삶은 이게 다인가? 하며 살았다 시련이나 불행은 남의 것인양 곁에 오면 묻기라도 할 것처럼 깊게 공감하지 못한채 사소한 두려움으로 살았다 그럴 수 있었다. 결혼전에는 부모님께 결혼후에는 남편에게 나의 생사여탈권을 적당히 남겨놓고 내 할 일은 적당히 하며 살았으니까 그 때는 누구나 나를 간섭하게 두었다 그 간섭이 싫을 때는 때론 물러나고, 때론 숨으면서도 얼마든지 간섭하도록 말이다 책임만은 면하고 싶었다 영화나 드라마 혹은 친구의 고민상담 같은, 인생의 고통의 장면을 멀리서 보던 때에 느껴지던 두려움은 남편이 혹은 부모님이나 가족 누군가가 해결해 줄 것만 같았고, 누가 도와줄 것 같은 치사함과 닮아 있었다. 세상은 험하고 ‘넌 아직도 모르고 있는 일이 더 많다’ 고 말하는 어른들의 말 덕분에 내가 그렇게 문제 해결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는 것쯤 잘 알고 있어서 일까? 책임을 모두 내게 가져오는 건 너무 고된 일일 것 같아서 최대한 미루고 미뤄왔었다 삶은 공평하게도 그런 나를 허투루 지나치지 않았다 막상 내게 닥쳐온 삶의 현장은 ‘어떻게 세상이 이렇게 한번에 무너질 수가 있어?‘ 였다 함정에 빠진 것 같았다 왜 내게 이런일이.....라는 문장쯤은 단숨에 떠올랐다 어떤 사건이 누굴 골라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것쯤 알 나이이면서도 말이다 마치 내게만 닥친 시련처럼 암흑과 적막속에 혼자 갇힌 것 같은 느낌과 공포를 마주했다 가슴이 답답해서 숨이 빡빡하고, 하나도 우습지 않고, 목숨이 경각에 달린 듯 맥박이 빠르게 뛰는 일이었다 너무 무서워서 울수도, 누군가에게 고민상담하듯 가볍게 말로 꺼낼 수도 없었다. 식욕이 다 뭐란 말인가 그렇게 잘 먹던 내가 입에 뭘 넣고 싶지가 않았다 수시로 멍해지고 죽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끝도 없이 밀려왔다 덕분에 머리숱은 엉망으로 빠지고 체력이 바닥나서 힘 쓴 것도 없으면서 종일 누워서 끙끙 앓아댔다 내가 웃어도 되는 걸까 라는 자책은 늘 마주했다 죽을것 같은 그 시간들도 결국......... 흘렀다 시간은 감사하게도 애쓰지 않아도 흐른다 더 이상 물러 설 곳이 없던 어느 날, 마음에서 결연하게 떠올랐다 ‘할 수 없다 죽고 싶은 게 아니라면, 죽지 않고 살거라면 이제부터는 내가 나를 책임지고 살자‘ 오직 내 몫이었다. 누구와 나눌 수도 없고 나눠서도 안되는 것이었다 함부로 내 짐을 덜어줄 사람을 찾아내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너무 고독해서 괴로울 지경이었다 내 짐을 덜어줄 누군가는 없는 일이구나를 완전히 깨닫기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혹여 내 옆에 누군가 있다면 그 사람은 내 짐을 덜어주는 게 아니라 내 옆에서 같이 걸어주는 거구나를 알게 됐다 그 뒤로 내게 들려오는 말들은 이러했다 “당신이 이 문제를 겪는 최초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 마음이 놓일 것이다” - 마이클 싱어 <상처받지 않는 영혼> “ 죽어야 될 고민은 없어” - phj (우리엄마다) “살아야지 삶이 다 그렇지 작고 외롭고 흔들리는 거지 ” - 임재범 ‘살아야지’ “형도 그랬단다 죽고 싶었지만 견뎌보니 괜찮더라 살아야 갚지 않겠니 ” - 노라조 ‘형’ “난 상관없어 위험해도 그건 내 몫이야” - 옥주현 ‘나는 나만의 것’ " 시간이 남아 있다 나를 가꾸고 소중함을 찾을 시간이 충분히 남아 있다" - 마이클싱어 <상처받지 않는 영혼> "이 순간이 곧 삶이니까" - 영화 <언페이스풀> “ 이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 있는 단 한가지는 ’유머humor’ ” - 헤르만 헤세 <황야의 이리> 어차피 삶은 계속된다 life goes on 이 시련이 내게만 있는 것 같은 착각 내 시련이 세상에서 제일 큰 것 같은 착각 삶은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나를 단박에 웃게 해줄 수 있는 그 농담 한 문장 찾아 내는 것이 전부다 그 농담을 던지는 베짱 정도만 장착하면 된다 그러니 그렇게 심각할 것 없다 죽으라는 고민은 없다는 엄마 말이 딱 맞다